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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소식
의학칼럼-배둘레햄

작성일 : 2021-05-01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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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병원 가정의학과 허윤정 진료부장

 

배둘레햄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 ‘배둘레햄’은 제가 가입한 모임의 이름입니다. 코흘리개 주일학교 시절, 중고등부, 본당 청년부를 거치면서 삼사십년을 함께한 친구들의 모임입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배 둘레가 풍성한 살(햄)로 치장된 애들이 본당을 주름잡고 다니며 자기들끼리 거창하게 ‘배둘레햄 조직’이라 부르고 다녔죠. 살면서 결혼과 이사 등으로 떨어져 있어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우정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 중 반 이상은 30대 초반부터 고질병으로 쭉 이어져 온 제 오래된 환자입니다. 병명은 ‘비만’. 정확히 말하면 ‘과체중’입니다. 조직의 대들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체질량지수(BMI)는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눠서 얻은 값을 말하는데, 이 수치가 30 이상이면 비만, 25이상이면 과체중입니다. 자꾸 조직을 배신할 생각은 하지 마라고 우스갯소리를 합니다만 아마 죽을 때까지 ‘다이어트’를 외치다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초기 한동안은 저만 보면 비만약 처방을 부르짖고, 그렇게 몇 달 먹고 살이 좀 빠지면 조용합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처음보다 살이 더 쪘다고 다시 약 처방을 받으러 옵니다. 이른바 요요현상입니다. “이제 그만하자, 안 된다.” 하면 “진짜 마지막이다. 정말 열심히 운동하고 먹는 것 조절할 거라고.”, “야, 누가 약 먹으면서 밥 굶으라 카드노? 먹는 게 없으니 힘없다고 맨날 누워있고 운동도 안 하고….”

이것 하나만 기억합시다! 체중 감소에는 식사조절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빠진 체중의 유지에는 운동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요. 딱 한 알만 먹으면 살이 기적처럼 빠져서 다시 안 찌게 하는 그런 약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비만치료를 받으러 오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환상을 조금씩 마음에 품고 오시는 것 같습니다. 빨리 빠진 살은 빨리 다시 차오르기 쉽고, 탄수화물을 줄인 적절한 식사요법과 운동을 병행하여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요요현상은 필연적이라는 말을 마르고 닳도록 해드려도 조회시간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흘러가 버립니다. 비만 치료제로는 식욕 억제제, 지방흡수 억제제, 열생성 촉진제, 항우울제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인슐린 주사처럼 자가 주사 할 수 있는 약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처방되는 약은 식욕 억제제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사용하던 욕 억제제는 장기간 사용 시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식욕 억제제가 항전간제와 결합하여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약도 처방되고 있습니다.

어릴 적 집안에 있던 우물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수도 펌프가 생겼습니다. 물 한 바가지를 부어 두 팔로 힘차게 찍어 내리기를 반복하면 어느새 물이 콸콸 나오죠. 비만치료제는 초기 한동안의 체중 감량과 식욕조절에 한 바가지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일 뿐 입니다. 평생 비만약을 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비만치료는 ‘생활 습관의 변화’와 ‘꾸준한 실천’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비만약 처방을 원하는 환자들에게 식이조절과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각오가 없으면 비만 치료를 시작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각오 없이 시작하는 건 돈 버리고 몸 버릴 뿐이라고요.

스트레스만 받으면 먹는 것으로 해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달달한 것을 찾기도 하고, 피곤하니까 일 마치고 난 뒤 간헐적으로 먹는 맥주가 일상이 되어 버린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리면 그걸 깨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다른 방법들을 찾아보아야겠죠. 나이 들면서 할 수 있는 취미 하나쯤은 가지는 것도 좋고, 친구나 가까운 사람들과의 수다도 좋고,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달려와 주시 는 하느님과의 수다도 있잖아요.

밥 반공기 외에 딴 건 전혀 안 먹는데도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것 같다고, 거짓말이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하시는 50대 후반 이후의 환자 분들도 많습니다. 중년 이후 호르몬의 변화로 예전과 똑같이 먹고 움직이는데도 살이 찝니다. 이런 분들을 자세히 한번 살펴볼까요? 오며가며 누가 떡 한쪽 먹어보라며 줘서 딱 한쪽 맛만 봤고, 간 본다고 잡채 딱 한입 먹었다고 하십니다. 물론 이런 건 식사일지에 절대로 적어 오시지 않습니다. 딱 한입뿐이었기에 …. 그렇다 해도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이렇게 야금야금 살이 찌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가장 큰 이유는 전체 열량소모의 6-70%를 차지하는 기초대사량이 줄어들어서 그렇습니다. 기초대사량이란 활동을 하지 않는 휴식상태에서도 뇌가 움직이고 심장이 뛰고 숨을 쉬는 등의 기초적인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의 양을 말합니다. 기초대사량이 높아지면 가만 있어도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니까 체중감량에 엄청 도움이 되겠죠? 기초대사량의 40%는 근육이 담당한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근력운동이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대부분 열심히 운동한다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 걷기 위주의 유산소운동만 합니다.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코로나19 시대에 헬스장을 다닐 수 없으니 일상생활 안에서 윗몸 일으키기, 계단 오르기, 팔 굽혀 펴기 등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근력운동입니다.

‘운동! 음, 해야지.’하고 백만 스물두 번째 다짐을 하신 것은 아닌가요? 요즘 스마트폰에는 만보기 앱이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기도 하고 쉽게 내려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거 은근히 성취감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날씨도 좋은 요즘,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물 한 병 들고 밖으로 나가 봅시다. 아파트 계단 5층까지 오르고 동네 몇 바퀴 돌면 어떨까요? 물론 매일 해야죠.

출처 : 월간 빛 2021. 05. ( 통권 4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