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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소식
의학칼럼-동행

작성일 : 2021-07-01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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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글 허윤정 엘리사벳|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 가정의학과전문의 

“내일은 조금 더 나을 거라고/ 나 역시 자신있게 말해줄 순 없어도/ 우리가 함께하는 오늘이 또 모이면/ 언젠가는 넘어설 수 있을까….” 김동률의 '동행’이라는 노래의 일부분입니다. 묵직한 김동률의 보이스와 노랫말이 잘 어우러져 언젠가부터 참 좋아하게 된 노래입니다.

저희 병원에는 다른 병원에 없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습니다. 한 환자에 대해 관련된 모든 부서의 직원들이 함께 모여 그 환자의 현 상태를 이야기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그 환자의 치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를 합니다. 담당주치의, 한의사, 재활의학과 의사, 담당 간호사, 영양사, 원목 신부님, 원장 신부님, 때로는 약사, 물리치료사 선생님도 오셔서 그 한 분을 위한 오직 한마음으로 테이블에 둘러앉아 치료를 위한 동행을 시작합니다. 원목 신부님께서 ‘동심(同心)’ 프로그램이라고 이름 지으셨는데 정말 딱 맞는 이름인 것 같습니다.

저의 동심 프로그램의 첫 번째 환자는 50대 초반의 유방암 환자 분이셨는데 암이 뼈나 폐, 간으로 전이된 것은 물론, 피부까지 전이되어 눈으로 그냥 보기에도 한쪽 유방의 괴사가 많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미 1년 전에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으셨을 때만 해도 수술과 항암치료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상태였지만 환자 본인이 자연치유를 하시겠다고 항암치료나 수술을 거부하고 건강보조식품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다른 장기로의 전이가 진행되고 악화된 경우였습니다. 마침 그 즈음 개 구충제(펜벤다졸)가 암환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항암제를 대체할 치료법으로 인식하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암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혔으나, 작년까지만 해도 많은 암환자들이 드러내놓고 혹은 몰래 개 구충제를 복용하고 계셨습니다.

림프부종, 보행 장애, 욕창치료는 둘째치고 일단 설득하여 항암치료를 받게 하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한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환자 분은 아마 처음 진단받으셨을 당시에는 건강보조식품의 근거 없는 과장된 광고에 현혹되셨을 테고, 병이 진행된 지금은 항암치료를 받으며 힘들어 하시는 다른 환자들을 보며 불안과 두려움으로 더욱 망설이게 되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동심(同心)’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날, 환자 분과 그분의 치유를 바라는 가족과 의료진이 한자리에 모여 앞으로의 치료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실 것을 권유하는 여러 선생님들의 한결 같은 말씀에 결국은 환자 분도 동의하셨습니다. 이후 3차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으시고 본원에서 면역치료와 치유 프로그램을 병행하면서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서 움직일 수 없었던 팔의 부종도 많이 좋아지셨고, 무엇보다 겉으로도 엄청나게 커져 있던 유방의 종괴도 반이상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치료 시작 시기가 너무 늦어 버린 탓인지 뇌전이가 되면서 1년을 더 못 버티시고 말았습니다.

건강보조식품은 말 그대로 건강을 ‘보조"하는 ‘식품’일 뿐입니다. 영양제는 ‘영양제’일 뿐이지 ‘약’이 아닙니다. 식사만 잘 하신다면 영양제는 그저 들러리 일 뿐입니다. 암환자들이 가장 흔히 묻는 질문은 “뭘 좀 먹으면 나을 수 있을까요?”입니다. 정답은 너무 뻔하지만 ‘골고루, 잘’ 드시는 겁니다. 특정한 한 가지만으로 암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음식은 없습니다. 빵 등의 가공 정제된 곡물, 햄이나 베이컨 등의 가공 육류, 붉은 고기, 설탕이 많이 든 후식, 고지방 유제품 보다는 과일, 야채, 통곡물, 닭고기, 오리고기 등의 가금류, 생선으로 이루어진 식단이 암의 진행, 재발 위험을 낮추거나 생존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손상된 세포의 재생과 조직 회복을 위해 고기, 생선, 계란, 콩이나 두부를 매끼니마다 한두 가지 정도 섭취하면서 단백질을 보충해야 합니다. 고기는 가급적 튀기거나 숯불에 굽기보다는 찜이나 조림의 형태가 좋습니다. 생야채를 반드시 금할 필요는 없습니다. 백혈구나 호중구 수치 감소로 면역력이 떨어졌을 경우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해지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지만 암치료 중이라고 무조건 익힌 음식만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식중독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기, 생선은 익혀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과도한 염분의 섭취는 제한하여야 하며 경우에 따라 저염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지나친 제한은 암 치료 중인 환자에게 자칫 영양상태가 나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고추, 마늘 등의 양념을 가감하여 입맛에 맞게 드시면 됩니다. 설탕이 암세포를 자라게 한다는 근거는 없으나 과도한 설탕은 체지방을 증가시켜 암 재발의 위험 요인이 됩니다. 커피가 일부 암에서 예방효과가 있다느니 없다느니 논란이 아직 있습니다만, 연한 아메리카노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말씀드립니다. 현재 암 치료 중이신 분들은 엄격한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못 먹어 죽을 판인데 뭐든 입에 당기는 건 다 드셔도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기존의 치료법은 먼저 실험실 검사를 거치고, 동물실험을 통한 전임상 연구가 이뤄진 후 환자들에 대한 까다로운 대규모의 임상 시험 과정을 거치면서 치료 가능성, 안정성이 입증된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치료법으로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을 극복하고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한 치료법이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제도권 의료계에서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은 치료법을 대체의학, 보완의학이라고 합니다. 대체의학도 과학적 근거와 임상 연구가 충분히 제시되면 주류의학으로 편입되겠지요. 하지만 대체의학도 보완의학도 아닌, 근거 없는 치료법들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암환자들을 유혹하며 판을 치고 있습니다. 암환자가 치료만 된다면 뭔들 가리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방법들은 과학적 근거와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몇천 명, 몇만 명 중에 한 명쯤 효과를 봤을지 모른다 하여 그게 ‘나‘일 수 있다고 꿈을 꾼 대가가 위의 사례자처럼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주류인 현대의학을 기반으로 한의학, 대체의학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는 연구를 하겠다고 원장 신부님은 지금도 신발이 너덜해지도록 뛰어다니고 계십니다. 그 결과로 몇 가지 한약들은 전인병원의 연구를 바탕으로 미국 FDA승인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매일매일 병원의 일상은 꽉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진료도 해야 하고, 간호도 해야 하며 미사도 해야 하고, 환자들의 배식도 해야 하는 일상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심(同心)’을 진행하려면 따로 시간을 내어 그 환자를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몇 번의 면담을 거치고 준비한 것을 정리해서 오늘도 한마음으로 동행할 준비를 합니다. ‘묵묵히 함께하는 마음이 다 모이면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을까!’

출처 : 월간 빛 2021. 04. ( 통권 459호)